아티장 베이커스 모태성 셰프 정직한 빵이 신념인 ‘열혈 베이커’ 한 권의 책은 작가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듯이 한 덩이의 빵은 셰프 그 자체와 같다. 고로 아티장 베이커스의 빵은 모태성 셰프의 올곧은 성정을 닮았다. 그의 빵은 투박하고 꾸밈이 없으며 담백하다. 자신이 만든 빵에 0.1%의 거짓도 보태지 않는 남자, 그는 아티장 베이커 모태성이다. 취재·글 박소라 사진 이재희 서른아홉, 인생의 노선을 변경하다 제빵사들 사이에서 ‘모태성’ 혹은 ‘Baker M’이라는 이름은 제법 유명하다. 그는 2012년부터 ‘아티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워 도 빵집을 운영해 온 선발주자이며 셰프들의 필독서 『BREAD(제프리 해멀먼 著)』를 번역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Baker M’이라는 아이디로 개설한 개인 블로그를 통해 빵을 매개로 사람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때론 잘못된 인식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하며 싸움도 서슴지 않는 열혈 블로거다. 그런 그가 몇 년 전만 해도 컴퓨터 관련 회사에서 일하던 평범한 해외 영업사원이었다는 소릴 들으면 누군가는 눈을 동그랗게 뜰 지도 모르겠다. 먹을 것을 만드는 행위에 관심조차 없었던 그의 인생에 빵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흘러들어왔다. 그는 삼십대 후반의 나이에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한 가정의 가장인 중년 남자가 먹고 살기 위해 가장 쉽고 간단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은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오픈하는 것. 그러나 요리를 배워본 경험이 없는 남자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그는 영어에 능통한 재주를 살려 호주로 유학을 떠나 기술을 배우기로 한다. 한국에 돌아오면 파스타를 파는 작은 양식 레스토랑을 열리라. 그 꿈이 요리에서 제빵으로, 레스토랑에서 빵집으로 바뀌는 데는 그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리학교에 다닐 때 어느 날 교수님 중 한 분이 ‘아티장 브레드(Artisan Bread)’에 관한 책을 한 권 소개해줬어요. 잘 모르는 내용인데 재밌어 보이는 거예요. 아티장 브레드가 뭘까, 그때 처음 관심이 생겼죠” 그날 이후 그는 요리를 배우는 틈틈이 빵에 관련된 외서를 뒤지며 독학으로 빵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자신이 아티장 베이커가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귀국 후 빵집에서 일을 시작한 이유는 음식점보단 빵집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서였던 것. “그때 제 나이가 서른아홉이었어요. 취직을 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요리든 빵이든 상관없었죠.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었으니까” 서른아홉이란 숫자는 생각보다 무겁게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누군가에겐 삶의 안정을 찾은 나이일지 모르지만 모태성 셰프에게 서른아홉은 고작 출발선에 불과했다. 그 무렵 그의 선택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최선이어야 했다. 빵집에서 한 달을 일하고 받은 80만원의 월급을 아내의 손에 쥐어줄 때면 눈앞이 깜깜했고 젊은 제빵사들에 비해 턱없이 많은 나이를 떠올리면 숨이 턱 막혔다. 제 길을 찾기까지 한참을 돌아온 그의 인생에 환한 불이 켜진 것은 아티장 브레드의 색다른 매력에 눈을 뜨면서부터였다. 아티장 브레드에 빠지다 흔히 ‘느린 빵’이라고 불리는 아티장 브레드는 개량제나 화학 첨가물을 일체 넣지 않고 발효종을 사용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발효시켜 굽는 빵이다. 빠른 시간 내에 대량 생산해내는 빵들과 달리 역사가 깊고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아티장 브레드는 알면 알수록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 독학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연이은 실패를 겪었지만 실패는 도리어 그의 도전의식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직접 만든 사워 도(사워종)와 아티장 브레드를 기록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책을 보고 그대로 따라서 사워 도를 만들고 빵도 구웠는데 처음 몇 달 동안은 빵이 아예 부풀질 않는 거예요. 어떨 땐 떡 지고 어떨 땐 신맛이 너무 많이 나고…. 원인을 모르니 답답했죠” 사워 도를 그럴싸하게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만 6개월. 그마저도 제대로 된 건지 확인할 길이 없어 반신반의했단다. 기술에 대한 갈증은 그를 또 다시 유학이란 길로 이끌었다. 2012년, 결국 그는 사워 도 브레드의 고장인 샌프란시스코로 연수를 떠난다. 그는 제빵 학교에서 아티장 브레드 관련 코스를 수강하는 한편 타르틴, 보딩 등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워 도 빵집을 돌아다니며 진짜 사워 도 브레드의 맛을 익혔다. 그렇게 짧은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그해 겨울 한남동에 가게를 오픈했다. 사람들에게 아티장 브레드라는 개념을 전파한 국내 첫 사워 도 브레드 전문점, ‘아티장 베이커스’의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아티장 베이커스가 오픈한 무렵은 하드계열 빵이 막 알려지던 시기였다. 어떻게 보면 흐름을 잘 탔다고 할 수 있지만 아티장 베이커스가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그는 오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낯선 ‘사워 도’라는 단어와 한창 유행하던 ‘천연발효종’이라는 단어 중 어떤 것을 내세울지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중심을 잡아준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다. “시큼한 사워 도 브레드가 사람들에게 과연 먹힐 것인가 걱정이 되더라고요. 안되겠다 싶어서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레시피를 바꾸기로 했어요. 제 자신과 타협한 거죠”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작업실에 블로그를 통해 사워 도 브레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지인이 찾아온다. 그가 사워 도 브레드 전문점을 오픈한다는 소식에 응원차 매장을 들른 것. 마침 새로운 레시피로 테스트 작업을 하던 그는 순간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날 이후 ‘사워 도’라는 말을 매장에 써 붙이고 본래 계획대로 신맛이 나는 사워 도 브레드를 보란 듯 선보였으니, 그날의 사건은 그에게 쓰디 쓴 약이 된 셈이다. 물론 예상대로 사람들은 빵이 시큼하다며 사워 도 브레드를 거부했으며 매출은 1년 가까이 저조했다. 클래스를 시작하면서 겨우 안정을 찾았지만 그 역시 여느 빵집 오너들처럼 혹독한 시간들을 꽤나 흘려보내야 했다. ‘아티장 1.0’과 ‘아티장 2.0’의 시대 아티장 베이커스를 오픈한 지 6년째, 그는 요즘 빵 맛을 좌우하는 보다 근원적인 재료인 밀가루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아티장 브레드에 대한 생각도 처음보다 많이 바뀌었다고. “예전엔 정통 아티장 브레드만 고수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도 우린 유럽을 따라할 수 없어요. 환경이 다르고 입맛도 다르니까요. 그걸 인정하고 보니 ‘그렇다면 우리만의 아티장 브레드를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더라고요. 팥빵을 예로 들면 회분율이 높은 밀가루로 반죽해 천천히 발효를 시키고 직접 팥을 쒀서 ‘세미 단과자 빵’처럼 만드는 거예요. 아티장 브레드가 하드계열 빵을 뜻하는 건 아니니까요” 유럽의 기준이 아닌 아시아만의 아티장 브레드 기준을 만드는 것. 또한 우리 땅에서 나는 밀가루로 더 나은 빵을 굽는 것. 그는 이를 두고 ‘아티장 1.0과 아티장 2.0의 시대’라고 말한다. 아티장 1.0의 시대가 아티장 브레드를 만들기 위한 기술적인 부분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단계라면 아티장 2.0의 시대는 밀에 접근해 더욱 근본적인 맛을 추구하는 단계. 아티장 1.0에서 아티장 2.0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서 있는 그는 이제 한 걸음 더 내딛을 준비를 한다. “저도 이익을 좇아 움직여요” 누군가는 그를 두고 유별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역시 치열한 제빵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때론 만들고 싶은 빵과 잘 팔리는 빵 사이에서 방황하는 딜레마에 빠지며, 종종 적자를 보완할 방법을 찾아 헤매는 한 사람의 제빵사일 뿐이다. 그는 아티장 베이커스가 어떤 빵집이 되길 바라고 있을까. “처음 꿈은 원대했어요. 가게 이름이 아티장 베이커스잖아요. 원랜 ‘아티장 베이커들이 모인 빵집’, ‘아티장 베이커를 배출하는 빵집’을 만들고 싶었죠. 그런데 제 뜻을 고스란히 전달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지금 이렇게 되기까지 사람들을 많이 잃었고 시행착오도 겪었어요. 이젠 그저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 아티장 브레드를 만드는 공간을 꾸려나가려고 해요” 모태성 셰프가 얼마 전 새로 오픈한 아티장 베이커스 서래마을점의 매대에는 ‘좋은 빵을 만드는 아티장 베이커스’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푯말이 세워져 있다. 셰프들마다 좋은 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다. 문득 모태성 셰프에게 좋은 빵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개량제와 첨가물 없이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공정을 잘 지켜 만든 빵. 아무리 비싼 재료를 쓴다 해도 발효시간, 성형, 오븐 온도 등을 지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하다못해 둥글리기를 하는 과정도 중요하거든요. 또 보여주기 위한 빵보다는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화려하게 성형한 크루아상이 유행하고 있음에도 정작 ‘크루아상 맛집’이라는 아티장 베이커스의 쇼케이스에선 기본 크루아상 외에 변형된 크루아상들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 그것은 그가 예쁜 빵이 아닌 좋은 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제빵사라면 자신이 만드는 빵에 정직해야죠” 모태성 셰프의 커다란 손에 감싸인 반죽에서 온기가 새어나오는 듯 포근함이 느껴졌다. 약력 2006년 호주 윌리암앵글리스 요리 과정 이수 2012년 샌프란시스코 제빵 학교 연수 2012년~現 아티장베이커스 한남점 오너셰프 2014년 『브레드』 번역 출간 2016년~現 아티장베이커스 서래마을점 오너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