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Lee Min Chul 에꼴 르노뜨르 이민철 셰프 세계로 비상하는 파티시에 이민철 셰프는 매순간 무대 위에 서 있다. 깔끔하고 새하얀 유니폼을 입고 주방이라는 무대 위에서 디저트라는 도화지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다. 그런 그가 작은 무대의 배경을 세계로 옮기려 한다. 앞으로 그가 채워나갈 무대의 서막은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이다. 취재·글 박소라 사진 이재희 ‘이민철’이라는 남자에 ‘파티시에’라는 날개를 장착하면 이민철 셰프를 제과의 길로 이끈 것은 흥미롭게도 ‘군대의 추억’이다. 군대를 제대한 많은 청년들이 복학과 동시에 진로를 고민하는 나이, 이십대 중반. 그 역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때 그의 기억 속에 한 장면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행정병으로 군복무를 했는데 제 후임으로 제빵사가 들어온 거예요. 한 번은 ‘넌 나중에 뭘 하고 싶냐’고 물었는데 그 친구가 망설임도 없이 ‘제빵사가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무엇이 그 친구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만들었는지, 처음으로 제과제빵이 궁금해졌죠” 그날, 왜 하필 그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 ‘무엇’에 대한 궁금증이 그를 흔들었으리라. 그러나 덕분에 그는 남은 2년간의 대학시절을 온통 파티시에라는 직업을 탐구하는 시간으로 보내야 했다. 본격적으로 제과를 배우기로 결심한 2004년. 이민철 셰프는 에꼴 르노뜨르로 향했다. 디저트 종주국인 프랑스 제과를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프랑스 디저트는 실로 놀라웠다. 경양식이라고는 얇은 돈가스밖에 몰랐던 마산 출신의 청년에게 프랑스 디저트는 신세계였다. 그는 날마다 디저트가 가득한 그곳에서 제과를 배우는 일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파티시에라는 직업은 호기심이 많은 성격인 그에게 잘 맞는 옷이었다. 16주의 제과 과정과 1주의 제빵 과정을 거쳐 에꼴 르노뜨르를 수료한 그는 같은 르노뜨르 출신 김경록 셰프가 운영하는 프랑스 파티스리 라크렘에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라크렘에는 매장 벽면 하나를 차지할 만큼 큰 3단 쇼케이스가 있었는데, 셰프는 그곳에서 2년간 생크림케이크, 시폰케이크, 오페라, 포레누아, 타르트, 크루아상 등 에꼴 르노뜨르에서 배운 프랑스 디저트들을 자유자재로 펼쳐보였다. 그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준 프랑스 유학 생활 현장에서 경험을 쌓던 셰프가 돌연 프랑스로 유학을 간 것은 2006년의 일이다. 그는 결혼과 동시에 라크렘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떠났다. 파티시에에게 프랑스는 동경의 장소. 그에게도 물론 프랑스 유학의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무렵 자신의 유학은 사실 도피성이 짙었다고 고백했다. “프랑스 올 때 아무런 계획도 없었어요. 비시(Vichy)라는 조용한 도시에서 일단 어학 공부만 하자 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죠. 막상 쉬고 보니까 좀이 쑤셔서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6개월 후 프랑스어를 겨우 하게 되었을 때, 그는 프랑스에서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당시 그는 유학생 신분으로 저렴한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는 스타주를 할 수 있었다. 100여 번의 구직활동 끝에 겨우 얻게 된 첫 직장은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유명 파티스리 ‘젤라드 뮐로’. 제라드 뮐로는 르노뜨르의 수제자로 알려져 있어 당시 르노뜨르의 배합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쇼케이스에 화려하게 진열된 케이크를 보고 반한 그는 그 길로 문을 열고 들어가 셰프를 불러달라고 했단다. 그가 제라드 뮐로에게 서툰 프랑스어로 한 말을 요약하자면 세 문장이다. “나는 에꼴 르노뜨르를 나왔다. 한국 제과점에서 2년 정도 근무했고, 일을 잘 한다” 제라드 뮐로는 당당한 한국인 셰프를 기꺼이 채용했다. 그는 제라드 뮐로에서 샌드위치, 슈, 타르트, 를리지외즈 등의 제품부터 마요네즈나 소스를 만드는 것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그때 주방에 경력이 10년 된 일본인이 한 명 있었거든요. 일을 굉장히 잘했어요. 반대로 일을 정말 못하는 베트남계 프랑스인도 있었는데, 두 친구랑 셋이 손발 맞춰 일하는 게 정말 재밌었어요. 스타주라 임금이 교통비 정도였지만 그땐 그냥 제라드 뮐로라는 유명한 곳에서 전 세계 파티시에들과 소통하고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즐거웠던 8개월의 시간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민철 셰프는 요즘도 종종 제라드 뮐로를 만난다고 했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여전히 현장을 전두 지휘하는 제라드를 보며 그 역시 훗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언젠가 한 번은 아직도 일하냐고 물었더니 ‘이게 내 일이니까’라고 당연한 듯 대답하더라고요. 제가 일할 때도 그는 새벽에 장을 보는 일부터 시작해 바게트 등의 빵을 만드는 것까지 도맡아 했었어요” 그런 선배의 등을 보며 일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그는 지금도 실감하고 있다. 게다가 제라드 뮐로는 그가 에꼴 페랑디에 입학할 때 친필로 추천서를 써 주기도 했으니, 그와 제라드 뮐로는 보통 인연은 아닌가보다. 상공회의소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인 에꼴 페랑디는 당시에도 지금처럼 들어가기 힘든 곳으로 유명했다.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친 후 합격해야 입학할 수 있었다. 에꼴 페랑디의 과정은 프랑스의 제과 기술 자격증인 CAP를 취득하기 위한 수업 위주로 구성된다. “에꼴 페랑디는 기본을 굉장히 중시해요. 바닐라 빈 같은 건 아예 사용하지도 못하게 해요. 위생은 물론이고 설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의 이론적인 부분들을 다 배울 수 있었어요. 이론 수업이 중요하다는 걸 이곳에서 깨달았죠” 에꼴 페랑디에 다니면서도 현장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호텔 브리스톨에서 호텔 제과점의 시스템을 경험해보는가 하면 서용상 셰프가 운영하는 르 그르니에 아 팡 라파예트에서 주말마다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 온 지 2년이 지난 2008년, 그는 CAP를 한 번에 취득했다. 그가 프랑스에서 경험하고 배운 모든 것들은 훗날 그가 에꼴 르노뜨르 강사로 일할 때 좋은 밑거름이 된다. 제과 강사로 일한다는 것 한국에 돌아온 그는 에꼴 르노뜨르에 강사로 입사했다. 프랑스 제과를 가르치는 곳인 만큼 프랑스에서 배운 것들을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다. 이민철 셰프는 현재 에꼴 르노뜨르에서 주 5회 하루 8시간씩 제과 및 비엔누아즈리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그 역시 초창기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장에서만 일했을 뿐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이 없으니 서툰 것이 당연했다. “하루 일정을 30분 단위로 타임테이블을 만들어놨어요. 아침 7시에 강의실에 나와서 혼자 세팅을 해놓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혼자 막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한 번은 그의 수업을 들은 학생 두 명이 갑자기 그만두기도 했단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은 학생들과 보다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와 선생님은 엄연히 다른 직종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셰프들은 끝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 르노뜨르에 오는 학생들에게 프랑스 최신 트렌드를 가르치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제가 먼저 트렌드를 앞서 가야죠” 때문에 그는 <주날 드 파티스리> 같은 외국 잡지에서 기발한 제품을 발견하면 수업에 적용할 수 있을지 여러 번 테스트를 거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수업과도 연결되는 <파티시에> 연재는 그에게 하나의 자극이 된다고. 단, 그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반드시 지키는 매뉴얼 2가지가 있다. 기본과 마음가짐. “테크닉보다 중요한 건 재료에 대한 이해나 만드는 과정에 대한 지식, 즉 기본이에요. 그래서 제 수업은 항상 ‘왜 그런 것일까’에 집중해 진행되죠. 또 한 가지는 마음가짐인데, 전 학생들에게 깨끗한 흰색 위생복을 단정하게 입을 것을 유독 강조하는 편이거든요. 그게 파티시에라는 직업에 대한 일종의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파티시에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뜻밖에도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답변했다. 대신 파티시에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과거를 눈물 나게 후회하고 있을 거란다. 그래서일까. 그는 학생들의 마음속에 파티시에라는 직업의 가치를 새겨주고 싶다. “지금 본인들이 하는 일이 좋은 직업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제라드 뮐로에서 일할 때 다양한 국적의 셰프들이 있었거든요. 근데 어느 날 가만 보니까 모두가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거예요. 굳이 말이 필요 없이 하나로 통하는 거죠. 그때 느꼈어요. 아 진짜 멋진 직업이구나” 10여 년 가까이 강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늘 같은 내용으로 강의한 적은 없었다는 이민철 셰프. 그는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자신의 미래를 누구보다 성심성의껏 설계한다. 그런 그의 목표는 ‘SIRA’와 같은 세계 대회에 출전해 이름을 날리는 것. 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제 타깃은 사실 국내가 아니거든요(웃음). 제 디저트만 봐도 전 세계인들이 제 이름을 알고, 나아가 제가 한국의 제과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척도가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