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풍차 제과점 김영일 셰프 정상을 향해 직진한다 작고 하얀 반죽이 서서히 부풀어 노릇하고 커다한 빵으로 변모하는 모습. 그 신비로운 모습에 매료되어 제빵사가 된지 25년이 됐다. 그리고 그중 20년을 한 직장에서 보냈다. 하얀풍차 김영일 기술상무의 간결하고 굵직한 경력이다. “사장님이 칠순까지 같이 하자시던데요?” 칠순까지 남은 시간 25년. 한창 번성 중인 하얀풍차에서 그가 이룰 일들이 아직 너무나도 많다. 취재 · 글 박소라 사진 이재희 적성에 딱 맞는 일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빵집에서 취업 활동을 한 것은 김영일 셰프에게 운명이었다. 만약 빵집에서 빵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반죽을 손으로 쥐어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빵집 혹은 제빵사에 대해 좋은 기억이 더 많다. 운 좋게도 동시대의 제빵사들이 흔히 겪었던 열악한 생활을 제대로 실감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골방이나 주방 한 켠에서 쪽잠을 자던 것,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못해 배를 곯았던 것 등은 누군가의 무용담일 뿐이다. 실제로 그는 대부분 큰 직장에서 일을 했다. 울산 출신의 그가 취업 활동이라는 명목 하에 1년간 제빵을 배우고 상경한 것은 1993년. 서울에서의 첫 직장인 부케도르는 그의 기억 속 ‘환상의 도시’였던 논현동에 자리했다. 매장, 공장, 숙소가 층별로 갖춰진 부케도르는 강남 일대에서 규모는 물론 매출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숙소가 그 당시 마치 호텔처럼 시설이 좋았고 근무 환경도 좋았어요. 첫 단추를 잘 꿰어서 제빵사란 직업에 더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케도르에서 그는 반죽을 담당했다. 워낙 장사가 잘 되던 빵집이라 작업은 힘들었지만 그는 빵을 만드는 일이 점점 더 좋아졌다.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만난 것도 한 몫 했다. 특히 지춘구 셰프는 김영일 셰프가 다음 직장인 주재근 베이커리는 물론 하얀풍차에서 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배다. 뿐만 아니라 나중의 일이지만 그는 부케도르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과 동경제과학교로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하얀풍차를 종횡무진하는 남자 1997년 김영일 셰프는 하얀풍차에 입사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도 하얀풍차에 머물고 있다. 물론 하나의 매장에서 쭉 일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매탄점에서 일을 배웠고 몇 년 후 책임자의 직급을 달고 신영통점으로 이동했다. 책임자로서 처음 맡은 빵집이었던 하얀풍차 신영통점은 논현동 부케도르의 규모와 맞먹을 만큼 규모가 컸다. 40여 평의 매장, 70여 평의 공장이 있는 큰 빵집을 이끌며 하얀풍차에서 입지를 다져가던 어느 날, 주온영 대표가 그를 매탄점으로 다시 불렀다. 그가 신영통점으로 간 사이 매탄점의 매출이 급격히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과 함께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감행했어요. 매장부터 메뉴까지 싹 바꿨죠. 한 번만 굽던 빵을 두세 번 굽고 이런저런 마케팅도 펼쳤어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매탄점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두 배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매탄점을 안정화시킨 후 망포점으로 인사발령을 받게 된 것이 2013년도의 일이다. 김영일 셰프가 지금까지 몸담고 있는 하얀풍차 망포점은 매장만 50여 평에 달하는 대형 빵집. 같은 건물 지하에는 2개의 제빵 공장이, 4층에는 제과 공장이 있으며 3곳의 공장에서 일하는 38여 명의 제빵사가 그와 함께 하얀풍차의 제품을 책임지고 있다. 홀 직원들과 아르바이트생들까지 모두 합치면 전 직원은 100명 가까이 된다. 망포점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부분은 진열대 빼곡이 놓인 빵이다. 현재 매장에는 300종 넘는 빵이 마련돼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신제품이 출시되니 빵의 종류가 줄 일이 없다. 한 예로 얼마 전에는 아침에 먹는 식빵과 저녁에 먹는 식빵을 출시했단다. “베이크 플러스 김웅일 대표님이 아이디어를 줘서 개발한 거예요. 아침에 먹는 식빵은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가고 저녁에 먹는 빵은 단백질이 많이 들어가요” 영양소까지 고려해 만든 이색 식빵은 이미 손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매장을 찾는 연령대가 다양한 만큼 제품은 국적과 시대를 불문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제품들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낸다. 때문에 매장에서는 빵 접시를 든 중년 남성들부터, 교복 입은 학생들, 아이 손을 잡고 온 엄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모습까지 두루 볼 수 있다. 향수를 자극하는 비주얼의 스테디셀러도 상당하다. ‘세얼간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대표메뉴 ‘만득이 빵’부터 400개씩 판매되는 ‘화이트 롤’, ‘마카롱 크림치즈’ 등 겉모습은 평범해보일지 몰라도 기본 10여 년간 롱런한 제품들이다. 뿐만 아니라 매달 15일과 16일은 50%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데 이때 신제품들을 손님들에게 선보인 후 반응이 좋으면 바로 개시하곤 한다. 행사 기간 동안 매장에는 평소보다 2,3배가 넘는 손님들이 하얀풍차를 찾고 매출 역시 몇 배로 뛴다. 하얀풍차가 위기에 닥칠 때, 리뉴얼을 하거나 새로운 매장을 오픈할 때 김영일 셰프는 마치 슈퍼맨처럼 등장해 주온영 대표를 돕는다. 그의 손이 스치면 매장은 활력이 넘치고 매출은 부쩍 오른다. 이쯤 되면 하얀풍차와 그는 ‘윈윈’하는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얀풍차 성공의 원동력은 복지 셰프들이 한 번쯤 꿈꾸는 나만의 가게. 김영일 셰프라고 가게를 오픈하는 것을 꿈꾼 적이 없었을까. 하지만 그는 결국 현장에 남는 것을 택했다. 무엇보다 하얀풍차에서 힘이 닿는 한까지 빵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가 이토록 오래 일하고, 또한 평생직장으로 하얀풍차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복지’를 꼽는다. 제과제빵업계의 근무환경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던 시대에도 하얀풍차의 복지는 남달랐다. “당시로서는 정말 최고였죠. 매장이 수원에 있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는 직원들에게 교통비 10만원씩 더 지급됐고 보너스 수당은 월급의 100%였어요. 그때의 복지가 지금도 여전해요. 오후 6시가 넘으면 저희는 시간 당 1만원의 추가 근무 수당을 받아요” 하얀풍차의 복지는 이미 동종업계 사장들은 물론 셰프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가끔 복지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묻는 문의 전화도 받는단다. 탄력적인 근무가 가능하기에 직원들간의 분위기가 좋은 것은 당연지사. 이는 장기근속 직원들이 많은 이유이며 나아가 하얀풍차가 해가 갈수록 힘차게 에너지를 뿜어내는 비결이다. 제빵사의 가장 큰 임무는 빵을 제대로 만드는 것. 하얀풍차에는 그 외 조건들이 이미 제대로 갖추어져 있기에 기술자들은 그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누군가는 한 직장에서 너무 오래 일하면 나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빵집의 경우 근무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으면 제빵사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다. 김영일 셰프가 바로 그 표본이다. 실제로 그는 리치몬드제과학원이나 베이킹 스튜디오 등에서 신기술을 배우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제품을 연구한다. 일본 동경제과학교, 프랑스 발로나, 독일 C.S.M 등 해외 연수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다니고 있다. “긴 시간 한 길을 걷다 보면 기술도 ‘노화’돼요. 요즘엔 해외 유학파 셰프들도 많고 전에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제품들도 생겨나서 베이킹 클래스가 많은 도움이 돼요. 기술도 익힐 수 있고 최근 트렌드도 알 수 있거든요” 한 번은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카늘레를 배우러 갔는데 수강생들이 모두 아주머니들이라 앞치마를 동여매고 같이 수업을 들은 적도 있다고. 그렇게 차츰차츰 쌓아온 기술들은 하얀풍차에서 마음껏 발휘되니 하얀풍차의 제품들은 매년 좋아질 수밖에 없다. 수원의 명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얀풍차에서 20여 년을 일하는 동안 그는 사람을 얻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를 하얀풍차로 이끈 것은 선배였으며 그가 제빵사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주온영 대표다. 또한 지금 망포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20년간 알고 지낸 사람들이니 그의 말이 백번 이해간다. 망포점의 주방에 들어가면 중년의 셰프들이 노련한 손놀림으로 반죽을 다루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어찌나 손발이 척척 맞는지 미소가 지어질 정도다. 그는 듬직한 그의 20년 지기 동료들을 믿고 동료들은 그의 뒤를 군말 없이 따라온다. 취재 당시 바쁜 주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모두가 입을 모아 “안녕하세요” 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던 모습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하얀풍차는 9월 중에 동탄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망포점에서 일한지 4년째인 그는 동탄점 매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시 매장을 옮긴다. 2년 후인 2019년에는 매탄점이 재건축에 들어간다. 그리하면 그는 다시 매탄점으로 가 망포점과 동탄점에서 했던 것처럼 매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몇 년간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니 다시 말하면 앞으로 최소 5년간은 숨 돌릴 틈 없이 빽빽하게 계획이 세워져 있는 셈이다. 주온영 대표는 하얀풍차를 성심당, 이성당처럼 지역을 대표하고 국내에 내로라하는 역사 깊은 빵집으로 만드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김영일 셰프의 목표이기도 하다. “사장님이 믿고 따라오라고 하시니 저도 열심히 가야죠” 힘차게 돌아가는 풍차처럼 하얀풍차는 멈춤 없이 계속 달리고 있다. 김영일 셰프는 지금까지 그리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하얀풍차가 달리는 길을 바짝 쫓아갈 것이다. 약력 1992년 울산 서울 제과 근무 1993년 논현동 부케도르 근무 1994년 연희동 피터팬 근무 1994년 화곡동 주재근 베이커리 근무 1997년 하얀풍차 매탄점 근무 2002년 하얀풍차 신영통점 근무 2008년 하얀풍차 매탄본점 근무 2013년~現 하얀풍차 망포점 기술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