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Park Se Kyu 한 조각의 디저트에 담긴 진심 마마롱 박세규 셰프 파티시에들 중에서 박세규 셰프만큼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가 만든 디저트는 그의 모습처럼 소박하면서 정갈하다. 그런데 그 소박한 디저트를 한입 떠먹은 순간, 정신이 반짝반짝해진다. 박세규 셰프는 그 자체로 빛이 나진 않지만 누군가의 행복을 빛내줄 디저트를 만드는 파티시에다. 대화를 주고 받을수록 진국인 사람과 먹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디저트. 둘의 조화가 참 맛깔스럽다 취재 · 글 박소라 사진 이재희 제과에 매력을 느끼다 제주도에 디저트 전문점이 드물었던 2014년, 마마롱은 현재의 애월이 아닌 서귀포에서 10평 남짓한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시작했다. 고급 디저트를 판매하는 이 작은 디저트 숍은 제주도에 등장하자마자 큰 인기를 몰고 왔다. 처음에는 서울의 유명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오픈한 디저트 숍이라는 점이, 지금은 젊은 셰프의 야무진 손맛이 담긴 디저트가 마마롱의 유명세를 높이고 있다. 박세규 셰프는 30대 초반, 제과제빵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해에 인기 디저트 숍의 오너셰프가 됐다. 늦은 나이에 제과제빵을 시작해 조금 이르게 가게 오픈의 꿈을 이뤘지만 그가 겪어온 시간은 결코 누군가와 비교해 뒤쳐지지 않았다. 더욱이 마마롱을 이끌어온 지난 5년은 그를 빠르고 혹독하게 성장시켰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사실 요리였다. 군대 가기 전에 고향인 제주도의 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좋은 기억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주방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면서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내고 손님들에게 그것을 대접하며 소통하는, 레스토랑이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는 즐겁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그의 꿈은 요리를 하는 것이었다. 외삼촌이자 그와 함께 마마롱을 오픈한 김정한 대표가 제과제빵을 권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요리사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제과제빵을 시작한 2005년은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유명 드라마로 인해 파티시에라는 직업이 한창 각광을 받던 시기였다. 그가 요리에서 제과제빵으로 방향을 틀을 수 있었던 것은 베이커리시장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요리와 제과제빵은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른 분야다. 그는 김상엽제과제빵학원에서 제과제빵을 배운 뒤 곧바로 양재동 라크렘에 취직했는데, 막상 기초부터 배우고 보니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마침 집안 사정이 생기면서 3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의 외도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가 발을 디딘 곳은 결국 서울이었다. 멀어진 뒤에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더니 그에게는 그것이 제과제빵에 대한 갈망이었나 보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압구정 CGV 건물 1층에 자리한 ‘정글짐’에 입사했다. 정글짐은 빵부터, 브런치, 파스타 등의 간단한 식사 메뉴, 디저트까지 즐길 수 있는 베이커리 카페로, 밤에는 와인을 제공하고 주말에는 조식 빵 뷔페를 운영했다. 그에게 정글짐은 여러 분야를 배울 수 있는 열린 무대였다. 제빵보다 예술적인 감각을 필요로 하는 제과가 그의 적성에 맞는다는 사실도 그 무렵 깨달았다. “제과의 마지막 공정인 몽타주를 셰프들이 ‘조립한다’고 표현하잖아요. 각각의 구성요소들을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제품이 탄생하는 것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저는 그 과정이 즐거워요” 제과를 보다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정영택 아트스쿨에 입학하기도 했는데, 이때 한 가지 재료를 여러 방식으로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초콜릿 공예 등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재료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고 한다. 최고의 스승은 다양한 경험 정영택 아트스쿨을 졸업한 후에는 홍대에서 케이크 숍으로 유명한 ‘스노브’에 취직했다. 당시 스노브는 동경제과학교 출신의 이용범 셰프가 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박세규 셰프는 스노브의 분위기와 케이크 스타일에 마음이 끌렸다. 화려하지 않지만 재료 본연의 맛이 담긴 쇼트케이크. 실제로 현재 마마롱에는 글라사주를 입힌 화려한 디자인의 무스케이크보다 과일로 맛을 내고 크림으로 장식한 일본풍 케이크들이 많다. 초창기 마마롱은 지금보다 더욱 스노브를 닮아 있었다고. 그는 그가 원하는 케이크의 기본기를 스노브에서 많이 익혔다. 다음 근무지는 샘킴 셰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나세라’.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플레이트 디저트는 접시 위의 예술이라 불리는 디저트인 만큼 실험적인 것을 많이 시도해볼 수 있는 분야다. 그는 이에 대해 ‘접시를 꾸민다’고 표현했다. 3년간 보나세라에서 접시를 꾸미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예술적인 감각과 독특한 제과 기술들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현장에서 일할 때마다 늘 배움에 대한 갈증이 인다고 했다. 알고 있는 것을 더 깊이 파고 싶었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당시 그를 자극하던 것은 일본 제과 공부였다. 일본 제과를 배울 수 있는 교육 기관을 물색하던 그에게 샘킴 셰프가 한 가지 조언을 한다. 현지에서 일본의 제과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껴보면 어떻겠냐는 것. 그리하여 2012년 4월, 그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가 일본에서 근무한 곳은 독특하게도 대형 제과제빵 생산 공장이다. 라뒤레, 앙젤리나, 센비키야 등 백화점에 입점하는 유명 브랜드 제품을 현지 레시피에 따라 일괄적으로 생산하는 외주 업체였다. 그곳에서는 일본 도쿄 내 대부분의 백화점에 제공되는 모든 제품이 만들어졌다. 프랑스와 일본의 유명 디저트를 한 치의 오차 없이 흉내 내며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은 그에게 좋은 기회였다. 그가 일본의 생산 공장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주방의 청결 관리. 그곳에서는 청결과 위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작업장 청소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이것은 그가 현재 매장을 운영하는 데도 중요한 규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늦깎이 유학생인 만큼 그는 일본에서 일분일초도 낭비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일본의 제과점들을 돌아다니고 책을 보면서 제과를 공부했단다. 그에게 일본에서의 기억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지만 유학 생활이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올곧은 마마롱의 디저트 일본 유학 후 박세규 셰프가 김정한 대표와 함께 문을 연 곳이 마마롱이다. 사실 그의 목표는 38세에 가게를 오픈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가 그에게 가게 오픈을 권유하면서 그의 꿈은 앞당겨졌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업무를 분담한다. 그가 자신의 전공인 제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인테리어 같은 제과 외의 분야를 도맡은 김 대표의 도움이 크다. 이는 품이 많이 드는 품목인 생토노레를 판매하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디저트를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1호점을 오픈한 지 2년이 지난 2016년 1월에는 서귀포의 반대 방향인 애월에 2호점을 냈다. 2호점은 1호점과 달리 카페 공간을 병설하고 디저트 라인업도 늘렸다. 디저트 전문점이라기보다는 디저트를 제대로 갖춘 아틀리에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그 공간 안에서 손님들은 짧은 시간 머물기보다 디저트를 먹으며 오랜 시간을 보낸다. 지금은 제품의 퀄리티 유지를 위해 1호점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2호점을 본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2호점이 있는 터는 본래부터 마마롱의 자리였다고 한다. 준비 기간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지면서 시험 삼아 오픈한 매장이 바로 서귀포 본점이었다고. 그러니 2호점은 어찌 보면 마마롱의 진정한 출발인 셈이다. 서귀포와 애월, 제주도의 유명 관광 지역에 자리 잡은 디저트 숍은 지역을 넘고 시간을 이어 5년간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박세규 셰프가 추구하는 디저트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는 구성요소들의 궁합을 생각한다. 화려한 디저트보다 소박하고 정갈하지만, 먹었을 때 맛이 조화롭게 느껴지는 디저트. 때문에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가장 좋아하며 만족스러운 디저트를 주로 선보이고 있다. “두 곳의 매장을 운영하던 동안은 제가 꼭 해야 하는 부분만 맡아서 하고 나머지는 직원들에게 가르쳐주면서 만들도록 이끌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완성도가 제 기대치보다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직접 대부분의 공정을 도맡게 됐어요.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 예전보다 요즘이 훨씬 만족스러워요” 오너셰프가 제품에 얼마만큼 신경 쓰느냐가 매장 운영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그는 5년 동안 마마롱을 이끌어오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때문에 이제는 매장을 하나둘 늘리기보다 적은 인원이라도 함께 힘을 모아 지금의 자리에 단단하게 뿌리내리기를 꿈꾼다. 오랫동안 롱런하며 마마롱을 제주도의 전통 있는 제과점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장을 지키는 일. 그는 앞으로도 계속 오너보다 기술자로 남고 싶다. 박세규 셰프는 스스로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욕심 있는 제과만큼은 요령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왔다. ‘적당히’라는 단어는 마마롱에서 통하지 않는다. 당근케이크, 초코 케이크를 제외하고 당일 생산, 당일 판매의 원칙을 지키며 냉동시켜두었다가 판매하는 법이 없다. 과일 또한 생과일을 사용하기 때문에 케이크의 맛이 유독 신선하게 느껴진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 맛본 그의 디저트는 먹는 사람의 기분을 황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튀지 않는 평범한 비주얼 뒤에 숨은 정직하고 맛있는 맛. 그 맛이 너무 올곧아서 먹는 내내 웃음이 났다. 말재주 없는 셰프의 진심은 아마도 이 디저트에 오롯이 담겨 있는가 보다. 마마롱 주소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평화로 2783(광령리) 문의 064-747-1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