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크 권순만 셰프 새로 쓰는 제빵 공식 사람들은 어니스크 권순만 오너셰프를 ‘무염빵의 달인’으로 부른다. 소금을 넣고 빼며 부단히 무염빵, 저염빵을 연구해 온 그에게 ‘달인’이라는 꼬리는 태생적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빵을 파는 사람이기에 앞서, 빵을 먹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권순만 셰프. 그는 진정한 어니스크(HONESKE: Honestly Make, Bake)였다. 취재․글 구명주 사진 이재희 우연히 발견한 무염빵의 세계 소금은 빵이 천천히 발효될 수 있도록 돕고, 빵의 맛을 살린다. 빵을 만들 때 소금을 넣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불문율의 공식이다. 그러나 어니스크 권순만 셰프는 어느 날 공식을 뒤집었다. 소금을 넣지 않은 빵을 집중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28여 가지였던 무염빵의 종류는 현재 60~70여 개에 달한다. 그가 소금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아내의 건강 때문이었다. 신장이 나쁜 아내에게 나트륨은 ‘독’. 아내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빵을 고민하던 권순만 셰프는 빵을 만들 때 넣는 소금의 양을 조금씩 줄여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싱거운 빵’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일주일치 빵을 한 번에 주문해 가는 사람, 택배로 빵을 보내달라는 제주도 주민 등 여기저기서 그의 빵을 원했다. 심지어 서울대 연구실에 의뢰해 무염빵의 영양분석표까지 만들었다 하니 무염빵의 달인답다. 블로그에 공개된 영양분석표에는 무염빵 하나에 들어간 칼로리, 나트륨, 칼슘, 인, 칼륨의 양이 얼마인지 꼼꼼하게 체크돼 있어 믿음이 간다. 예를 들어 135.55kcal의 ‘무염 블루베리 모닝빵’에는 나트륨 0.01g, 칼슘 0.01g, 인 0.07g, 칼륨 0.09g이 들어 있다. 어니스크 매장에선 일주일을 기준으로 5개의 무염빵이 판매된다. 특히 재밌는 점은 주문 판매. “함초 분말, 스테비아, 아사이베리 분말 등 손님들은 자신이 빵에 넣고 싶은 재료를 가져와요. 심지어 직접 곡물을 빻아서 가져 오는 분도 있죠” 콩과 청양고추를 넣은 빵, 팥과 양파로 만든 빵 등 시중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스타일의 무염빵은 셰프와 손님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무염빵을 완성해가는 길은 험난했다. “소금을 뺐더니 빵이 예쁘게 부풀지 않고 힘을 잃더군요. 그래서 온도를 낮춰 천천히 빵을 만드는 등 저만의 방식을 고안해냈습니다” 2013년, 그는 무염빵 제조방법을 특허 출원하기도 했다. 친절한 권반장님 빵을 들려주다 권순만 셰프가 만드는 무염빵은 그의 블로그에 상세하게 공개된다. 토요일마다 올라오는 ‘한주간 무염빵 생산계획’은 가장 중요한 포스팅이다. “오늘은 손님이 가져오신 함초분말과 호밀가루로 치아바타를 만들었습니다” ‘권반장’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권순만 셰프는 어니스크 블로그를 통해 빵쟁이의 삶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빵을 만드는 과정을 일일이 사진과 함께 공유한 그의 글을 읽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아, ‘권반장’은 진심으로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대학에서 전자통신을 전공했던 그는 하마터면 제빵사가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이 될 뻔했다. 권 셰프가 제빵에 관심을 가진 건 군대에 복무하던 때였다. ‘빵을 배워보면 어떨까’ 하는 사소한 호기심은 제대 후 ‘빵을 배워야겠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학원에서 제과제빵 기술을 배운 그는 고향 안동의 레삐프랑스에서 일을 시작한다. 묵묵히 일을 배우던 그를 자극한 건 고향 친구였다. 김영모 제과점에서 근무하던 고향 친구가 안동에 올 때마다 서울 생활을 들려준 것이다. 결국 권 셰프는 김영모 제과점에 입사한다. 김영모 제과점에서 스파르타식으로 일을 배운 권 셰프는 빵과 디저트를 하나씩 섭렵해 나간다. 힘든 그를 일으킨 건 함께 일하던 10명의 친구 셰프들이었다. ‘우리도 나중에 꼭 멋진 가게를 내자’며 서로를 다독였던 권순만 셰프와 친구들은 어느덧 하나 둘 나이를 먹었고, 모두 업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특히 한민희 셰프는 권순만 셰프와 각별한 친구다. 현재 한 셰프는 포항에서 ‘어니스크’라는 이름으로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다. “어니스크 포항점은 가맹점이 아니에요. 어니스크라는 이름과 로고를 함께 쓰는 동지죠. 우리는 부재료나 포장지를 공동구매하고 좋은 기술을 공유합니다” 김영모 제과점을 나온 그가 이직한 곳은 아루베이커리였다. 당시 아루베이커리는 일본 스타일의 생크림케이크로 이름을 날리며 사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백화점에 한창 입점했을 당시 매장의 수만 14여 개에 달했다. 아루베이커리에서 양과자를 한창 만들던 권 셰프에게 하이몬드 제과점 홍상기 셰프(現 홍당무공방 대표)가 좋은 제안을 했다. “하이몬드 제과점 사장님의 지인이 뉴욕 퀸즈 플러싱 지역에서 가나안 베이커리를 운영했거든요. 한국인 제과장을 초빙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뉴욕행을 결심했습니다” 뉴욕에서도 당당한 ‘미스터 콘스타치’ 두 눈을 질끈 감고 미국으로 떠나긴 했지만, 막상 뉴욕에서 마주한 현실은 막막하기만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언어였다. 한국에서 공부해간 영어는 정작 소용이 없었다. 그가 통솔해야 할 주방 직원들 중 상당수는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 출신들. “제과장으로서 동료 셰프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선 스페인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죠” 인종의 전시장인 뉴욕에서 그는 영어, 스페인, 한국어를 동시에 써가며 주방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따뜻한 카리스마는 타국에서도 통했다. “텃새를 부리던 셰프들이 나중에는 저를 ‘콘스타치(Cornstarch)’라 부르며 다가와주더군요. 콘스타치는 ‘권(Kwon)’이라는 성과 ‘콘(Corn)’의 발음이 비슷하단 이유로 얻은 미국 별명입니다” 주방 동료의 인심을 얻은 그는 차츰 매장을 정비해나간다. “손님의 50%는 한국인 교포, 50%는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 러시아인 등이었죠. 입맛이 다 다르니까 최대한 다양한 스타일의 제품을 만들려 노력했죠” 보드라운 생크림케이크, 참치와 소시지를 이용한 담백한 조리빵, 촉촉한 스타일의 베이글 등은 미국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지금이야 뉴욕에서 파리바게뜨 등 한국 베이커리가 선방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 베이커리도 한국인도 낯선 존재였죠” 그는 가나안 베이커리의 매장을 퀸즈 플러싱과 롱아일랜드 지역에 각각 1개씩 더 오픈시키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뉴욕에 더 머무를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한국에는 지금의 아내가 된 여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성장하는 셰프, 진화하는 어니스크 한국에 돌아온 그는 아루베이커리에 재입사했고 그 뒤로 찰스 스미스 제과점, 노아베이커리 등을 두루두루 거쳤다. 제과점을 옮길 때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능동적으로 배웠다. 찰스 스미스 제과점에서 권 셰프는 책임자의 무게를 느낀다. “책임자가 곧 사장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가격을 정하고, 또 매장에 진열했죠” 어니스크를 오픈하기 전까지 근무했던 노아베이커리에서 그는 트렌드를 읽고자 연구했단다. ‘브런치’가 이제 막 알려지던 그때, 권 셰프는 발빠르게 브런치 메뉴를 특화하기로 했다. “매장 한편을 브런치 제품과 샌드위치 등으로만 꽉 채웠어요. 건강빵, 새우, 하몽, 베이컨, 과일, 채소 등을 함께 담아 테이크아웃용 브런치로 개발했고요. 가게가 압구정에 있었기 때문에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어요” 노아베이커리에서 제과장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언젠가 내 가게를 열리라’하는 꿈은 식지 않았다. 결국 그는 2013년 방배동 어느 주택가에 노란색 간판이 반짝이는 어니스크를 열기에 이른다. 권순만 셰프는 차근차근 지평을 넓혀가는 사람이다. 작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작았던 가게를 확장하는 공사를 단행했다. “베이커리는 서비스업이죠. 매장에는 앉을 자리가 없냐고 묻는 손님들이 참 많아요. 그럴 때마다 죄송할 뿐이죠. 나중에는 편하게 앉아 빵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을 더 만들 겁니다” 재료를 탐구하는 ‘우수숙련기술자’ 어니스크가 한 뼘씩 더 커질수록 셰프 또한 자란다. 2014년 권순만 셰프는 우수숙련기술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기술자’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그는 새로운 기술에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소금뿐만 아니라 설탕, 달걀, 우유를 넣지 않은 제품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계가 없는 제빵사가 되는 게 제 목표죠” 달걀과 우유를 먹지 않는 비건, 다이어트 중인 사람, 식단 조절이 필요한 환자 등 권 셰프 덕분에 ‘빵’과 친해진 사람들이 참 많다. 어니스크를 세상에 알린 건 무염빵이었지만, 소금이 들어간 어니스크의 일반 빵이 얼마나 맛있는지 손님들은 잘 알고 있다. 천연발효종을 사용하는 빵집이 유행처럼 번져나가다 보니, 어니스크 또한 천연발효종 전문점이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손님이 천연발효종만 쓰냐고 물으면 저는 아니라고 답해요.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선 액종법, 풀리시법, 탕종법, 오토리즈법 등 다양한 제법을 구사해야죠. 빵의 특성에 맞는 제법을 쓰는 게 가장 좋습니다” 어니스크에선 셰프가 매장에 나와 커피를 내리고, 주문을 받을 때도 많다. “매장 직원을 늘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생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데리고 있는 셰프들도 언젠가 독립해 자신의 가게를 열어야죠. 가게를 운영하려면, 제품만 잘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매장도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직원을 뽑을 때 목표가 무엇인지 꼭 물어요. 그 목표를 이루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권순만 셰프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 식빵도 맛있어요”, “무염빵은 우측에 있습니다” 셰프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매장에 울려 퍼졌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서는 기자를 셰프가 불러 세웠다. 그리곤 그는 “무염빵 드신 적 없죠?”라며 무염 소보로빵을 건넸다. 어니스크가 있는 방배동 골목을 돌아 내방역까지 걸으며 정겨운 빵을 베어 물었다. 생애 처음 맛본 무염빵이었지만 낯설지 않고 오히려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빵은 셰프 그 자신이라 했던가.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빵은 권순만 셰프와 참 많이 닮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