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만드는 빵집 더 박스 the BOX 한 남자가 있어, 빵을 너무 사랑한 압구정 로데오 부럽지 않게 활성화된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돈암동 로데오 거리. 그 메인 길을 벗어나 몇 블록 지나면 조금은 한적한 동네가 나오기 시작한다. 구제 옷가게, 세탁소 등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 자리하는 그 길을 걷다보면 ‘여기에 빵집이 있었나?’ 새삼 깨닫게 되는 익숙한 빵집이 있다. 그리고 그 빵집 안에는 ‘더 박스(the BOX)’ 보다는 왠지 ‘더 복서(the Boxer)’가 잘 어울릴 것 같은 포스 넘치는 탄탄한 한 남자가 빵을 만들고 있다. 원래 특전사 출신의 직업군인이었던 김영성 씨는 이라크로 파병가면서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라는 한 권의 책을 들고 가게 된다. 각종 식품 첨가물, 트랜스 지방 등 건강을 해치는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건강한 음식을 고민하며 사람들이 먹었을 때 소화도 잘되고 건강해질 수 있는 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정말 제대로 빵을 만들려면 프랑스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어학원 등록을 하고 유학을 준비했다. 그때 마침 프랑스인 셰프가 직접 빵을 만드는 기욤이 청담에 오픈했고, 그는 굳이 프랑스로 가지 말고 기욤의 프랑스인 셰프에게 제대로 빵을 배워보자고 결심한다. 그리고 2010년 6월, 기욤에서 프랑스 정통빵을 공부한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돈암동에 ‘상자에 모든 것을 담고 싶다’는 의미의 ‘더 박스’를 오픈하게 된다. 7.5평 공간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시간들 더 박스는 천연발효종빵, 바게트, 치아바타 등 식사빵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더 박스 빵의 특징은 산미가 강하지 않고 수분함량이 높으며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인기 있는 빵은 그날그날 다르지만, 밤식빵인 줄 알고 사람들이 사간다는 브리오슈, 오픈 초기부터 꾸준히 인기 있는 올리브 푸가스, 치즈를 듬뿍 넣은 치즈바타, 아몬드 크루아상 등이 반응이 좋은 제품들이다. 처음 한 명의 친구와 함께 시작했던 더 박스는 현재 김영성 씨가 빵을 만들고 판매까지 겸하는 1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팀 안에서 리더 역할을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셰프’라는 단어가 본인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어휘라며 그냥 ‘사장’이라고 불러 달라 말한다. 소도 때려잡을 것 같은 건장한 남자지만 혼자서 빵집을 꾸려간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은 일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새벽부터 나와서 빵을 만들고 그 빵이 다 팔리기까지 오로지 혼자서 그 일들을 감당해 내야 한다는 것. 체력적인 문제는 물론, 손님이 많이 없을 때는 그 외로움을 홀로 극복해 내야하는 점이 고충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퇴근길에 이곳을 지나는 직장인, 여대생, 외국인 교수님들 등 더 박스의 빵맛을 지지하는 층이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비록 홀로 빵집을 운영하지만 항상 열린 마음 자세로 일하기 위해 노력한다. 식사빵이 70% 이상이지만 나머지 30%는 페이스트리, 스콘, 브라우니처럼 달달한 제품을 찾는 손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제품을 구성한다. 그러다 보면 그를 도와주는 손님도 생겨난다. 더 박스를 자주 찾던 손님 중 독일인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친척이 독일에서 직접 빵을 만드는 제빵사였다. 그 손님은 고향에서 먹던 빵맛이 그리워서 김영성 씨에게 독일 정통빵 레시피를 전해주었고 그는 여러 번의 테스팅을 거쳐서 ‘풀콘브로트’라는 빵을 만들었다. 이 빵은 독일사워종, 호밀 90%, 유기농통밀 10%, 해바라기씨, 호박씨 등 건강에 좋은 재료를 듬뿍 넣어 유난히 묵직하다. 독일인 손님은 고향에서 먹던 그 맛과 비슷하다며 이 빵을 좋아했고 독일대사관에서 파티가 있을 때 빵을 한아름 사가기도 했다고. 때때로 암 투병 중이거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식이조절을 하다가도 정말 빵이 먹고 싶어질 때, 풀콘브로트를 사가기도 한다. 속이 불편하지 않다는 피드백과 함께. 빵, 그림, 커피, 와인 그리고 사람들 더 박스는 빵집이지만 커피, 그리고 와인도 있다. 커피와 와인은 판매하기도 하지만 김영성 씨가 좋아하고 관심이 많아서 들여놓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빵과 와인을 테이블에 앉아서 즐기다 가는 손님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사정상 그렇게까지는 못하지만 그가 공수해온 좋은 와인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번화한 길거리보다 동네에 밀착되어 있는 빵집을 운영하다 보면 소소한 에피소드가 생기기도 한다. 더 박스에 빵을 사러 오던 김성국 작가가 어느 날 이곳을 그리고 싶다고 제안했고, 빵집을 배경으로 한 장면을 연출해서 ‘저에게 소량의 빵을 나누어 주시겠습니까’라는 제목의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매번 올 때마다 오로지 천연발효종 빵만 사가는 독특한 여대생도 기억에 남고, 임신했던 손님들이 아이를 낳아서 함께 더 박스에 올 때면 감회가 새롭다는 김영성 씨. 가게들이 없어지고 생기는 속도가 유난히 빠른 성신여대주변 상권.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이곳 상권의 영업 유지 기간은 평균 2.13년으로 다른 상권에 비해 훨씬 더 변화의 폭이 빠르다고 한다. 이런 상권의 뒷동네에서 묵묵히 빵을 만들고 있는 김영성 사장은 때때로 지칠 때도 있지만 적어도 10년 이상을 내다보며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주소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 3가 134 문의 02-6407-8070 취재·글 김아름 │사진 이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