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민들이 아끼는 빵집 브로트가쎄 율리 취재 • 글 박소라 사진 이재희 광장동 골목을 평정하다 독일어로 ‘빵 골목, 7월’이라는 뜻의 브로트가쎄 율리(Brotgasse Juli)는 광나루역에서 5분 거리인 광장동의 한 골목에 위치해 있다. 어느 나라마다 작은 골목들이 남아 있는 풍경이 좋다고 말하는 주정아 대표는 빵을 뜻하는 단어 ‘brot’와 골목길을 뜻하는 단어 ‘gasse’, 자신이 태어난 달인 7월을 뜻하는 단어 ‘Juli’를 조합하여 상호를 지었다. ‘브로트가쎄 율리’에는 ‘작은 골목에 있는 빵집’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브로트가쎄 율리는 광장동 주민들 사이에서 ‘율리 빵집’이라는 애칭으로 통한다. 주정아 대표는 1986년 음대 교수인 남편을 따라 유학 간 독일 중부의 쾰른 지방에서 독일인 이웃 할머니를 통해 처음으로 베이킹을 배웠다고 한다. “독일인들은 아침마다 가족들이 함께 먹을 빵을 구워요. 집에서 빵을 구워 먹는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그때, 난생 처음 구운 사과 케이크는 제가 먹은 것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어요” 그 후로 주 대표는 독일에서 사는 12년 동안 독일인들처럼 매일 빵을 구웠다. 현재 율리 빵집에서 선보이는 제품들은 대부분 기교 없이 투박한 독일 스타일이다. 식빵은 ‘바이스브로트’라는 독일 빵의 레시피대로 만들고, 방망이 모양의 바게트 또한 ‘브로첸’이라는 독일식 바게트다. 3,40년 전 목욕탕 건물이었던 율리 빵집은 오래된 건물의 흔적이 미미하게 남아 있다. 파라솔이 놓인 앞마당과 독특한 출입구, 벽면 한 가운데 크게 뚫린 창이 이를 증명한다. 매장 안은 문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영국 해롯 백화점의 주변 지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벽화가 정면으로 보이고, 곧이어 중앙에 반듯하게 놓인 빵들에 눈길이 간다. 벽면에는 대표가 여행 다니면서 구입한 소품들과 쾰른 골목골목의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다. 카페 공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키친은 가정집 주방처럼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 매장에는 빵 냄새가 짙게 진동한다. 초창기 율리 빵집은 지금의 상가 건물 뒷골목에 위치한 13평짜리 로드숍이었다고 한다. 광장동에 빵집이라고는 파리바게뜨 뿐이었던 시절, 5,000원에 판매했던 독일식 식빵이 율리 빵집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꾸준히 빵집을 찾아온 단골손님들은 이제 ‘율리만의 빵 냄새’를 알아챌 정도라고. 그 중에는 율리 빵집의 빵을 먹은 후부터 빵을 좋아하게 된 손님도 있고, “밀가루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데 여기 빵은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손님도 있다. 주식으로 먹는 빵을 만든다는 것 율리 빵집은 프랜차이즈 빵집처럼 매일 똑같은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하루에 10~15가지의 빵들을 로테이션하여 선보인다. 주정아 대표는 제품에 첨가물이나 유화제를 전혀 넣지 않는다. 또한 100% 유기농 밀가루와 전남 구례 우리밀만을 사용하고 카카오 함량이 높은 발로나 초콜릿, 최고급 앵커 버터를 고집한다. 설탕 대신 단풍나무 시럽을 넣은 식빵, 100% 발로나 코코아파우더와 카카오 99% 다크초콜릿으로 만든 초콜릿 브로트 등 모든 제품들은 충분히 식사로 먹을 수 있게끔 만든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빵은 몸에 좋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어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빵이 곧 밥이거든요.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빵도 주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주 대표의 이런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몇 년 전 율리 빵집은 KBS ‘생생정보통’에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빵을 연구하는 곳’으로 출연했다. 당시 한 아기 엄마는 “모유 수유를 할 때도 먹은 빵”이라며 앞장서 율리 빵집을 알렸다. 뿐만 아니라 건너편에 있는 한의원 의사선생님은 “빵이 정 먹고 싶다면 율리 빵집의 빵을 먹으라”고 권한단다. “얼굴 한번 뵌 적이 없는데도 너무 감사하죠. 언젠가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광장동 주민들과 율리 빵집 사이에는 이미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대를 잇는 빵집 2년 전, 주정아 대표는 4대째 이어오는 독일 쾰른의 유명 빵집인 베커라이 벨터스(Bäckerei Welters)에서 2주간 단기 연수를 했다. 베커라이 벨터스는 대표가 독일에 있을 때 자주 빵을 사러 가던 곳이었다고 한다. 대표는 여전히 80년 된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는 베커라이 벨터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매장 한 쪽에는 그곳에서의 소중한 경험들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율리 빵집 역시 베커라이 벨터스처럼 역사 깊은 빵집이 되길 바란다. “독일의 빵집들처럼 2대, 3대로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율리 빵집을 찾아주는 손님들을 위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율리 빵집을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제겐 사명과도 같아요” 주 대표가 말하는 인기 비결은 간단하다. 트릭 없이 정직하게 빵을 만든다는 것. 그녀는 “주방도, 빵을 만드는 과정도 숨길 것이 없기에 훤히 들여다보여도 괜찮다”고 했다. 이 정도의 우직함이라면 율리 빵집이 광장동의 역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율리 빵집의 신념이 대를 이어 오래토록 전해지길 바라본다. 주소 서울 광진구 천호대로143길 27(광장동) 문의 02-453-0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