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듀레 정감 어린 손맛, 푸근한 인심이 넘쳐나는 빵집 취재 • 글 박선아 사진 이재희 ‘마부작침’의 정신이 이뤄낸 라듀레 15년 史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있다. 하루하루 무서운 속도로 급변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한 자리에서 묵묵히 버텨온 빵집이 있다. 대방동 초입, 공군회관 맞은편에 위치한 ‘라듀레’가 바로 그곳이다. 라듀레는 25년 경력의 소유자 정창배 셰프의 베이커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온 그는 서울로 상경해 잠실 ‘르노뜨르’, ‘오페라과자점’을 거쳐 삼성동 ‘빵굼터’의 책임자로 근무했다. 당시 정창배 셰프를 눈여겨 본 빵굼터 사장은 1억원의 돈을 선뜻 투자하며 가게를 열어볼 것을 권했다고. 이에 용기를 얻은 셰프는 6개월 동안 서울 곳곳을 누비며 자신의 첫 보금자리가 될 장소를 수색했다. 그러던 2003년, 여의도와 대방동의 상권이 만나는 지점인 데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고, 무엇보다도 주방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이 자리에 첫 매장 ‘빵굼터’를 오픈했다. 비교적 순탄하게 빵집을 운영하던 정 셰프는 불현듯 자신의 개성을 담은 제품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2007년 매장의 이름을 ‘라듀레’로 바꾸고 호기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김없이 시련은 찾아왔다. 바로 라듀레 양 옆으로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나란히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셰프는 좌절하기보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동네빵집’만이 지닌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자는 것. 그는 모양새는 투박할지라도 속 재료만큼은 아낌없이 채운 먹음직스런 빵을 콘셉트로 푸짐한 시식 행사를 벌였으며, 구매한 제품을 직접 가정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통해 동네 주민들과 자연스레 친분을 나누었다. 간혹 제품에 문제가 생길 경우, 즉시 매장 문을 닫고 손님에게 찾아가 원하는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것은 물론 손님들의 쓴 소리 하나하나 허투루 흘리지 않고 가르침으로 새겨들었다. 업계에 새로운 아이템이 유행할 때면 해당 제품을 개발한 셰프를 직접 찾아가 기술을 배우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셰프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라듀레의 매출은 1년 후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으며, 지금은 주민들의 두터운 신뢰를 기반으로 동네 대표 빵집으로 거듭났다. 노련한 제빵사가 만드는 다채로운 품목들 현재 라듀레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빵류가 70%, 케이크 • 구움과자류가 30%로 종류는 170여 개에 이른다. 가짓수를 점점 줄여나가는 요즘의 빵집 풍경과는 정반대의 모습. 정창배 셰프가 이토록 다양한 품목을 고집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0~100세까지 전 연령대의 입맛을 고루 충족시키자’는 모토 때문이다. 이를 위해 주방에는 경력 20~25년의 셰프 3명을 비롯해 ‘주단파’ 직급의 셰프까지 총 4명의 셰프가 손발을 맞춰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력이 오래된 셰프들을 고용하다보니 인건비가 상당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일정하면서도 좋은 빵맛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술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요. 믿고 맡길 수 있는 셰프를 고용하면 저는 오너로서 매장 경영에 더 집중할 수도 있고요. 고급 인력을 통해 제품력을 갖춘 것이 라듀레를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요” 라듀레 빵맛이 좋은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품질 좋은 제철 재료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제철에 나는 식재료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가장 잘 맞을 뿐더러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좋아 굳이 고급 재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제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 정 셰프의 지론이다. 이에 따라 라듀레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해당 시즌을 대표할 수 있는 주력 상품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딸기 철인 봄에 출시되는 ‘딸기 타르트’, ‘딸기 케이크’, 가을 • 겨울에 만나볼 수 있는 ‘호박 빵’은 라듀레의 매출을 톡톡하게 올려주는 효자 상품이란다. 더불어 셰프는 제품에 친근한 스토리를 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단순히 ‘호박 빵’을 판매하는 것보다 ‘셰프의 친형이 직접 농사지은 호박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호박 빵’이라는 스토리가 담긴 빵을 판매하면 소비자들에게 더 어필이 되면서 다른 가게와의 차별점을 만들어주죠.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중요한 작업이에요” 이밖에도 셰프는 손님들에게 제품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 보관법 등을 세세하게 일러주어 판매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입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책임을 다한다. 라듀레의 마지막 스퍼트를 향해 주변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는 늦은 밤에도 라듀레 매장은 여전히 환한 불빛을 밝히고 있다. 누군가는 기상하지도 않았을 새벽 6시부터 그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라듀레의 운영시간은 무려 19시간이다. 이는 장기간 지속되는 경제 불황 속에서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잡기 위한 정 셰프의 자구책이다. “당장에 살아남겠다고 직원 수를 줄이면 만들 수 있는 제품도 줄어들고 결국 악순환에 빠지고 말아요. 저와 직원, 가게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오너의 역할이죠” 정 셰프의 꿈은 소박하다. 더 좋은 기계와 설비를 들여 고품질의 다채로운 제품들을 선보이는 것, 여기에서 발생한 이익으로 직원의 복지를 개선시키고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 그리고 오래토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맛있는 빵집’으로 남는 것 이 세 가지다. 10년 뒤 쯤에는 후배 셰프에게 라듀레를 물려주고 온 가족이 베이킹을 즐길 수 있는 공방을 하나 운영하고 싶단다. 나눔의 의미를 그 누구보다 잘 실천하고 있는 정창배 셰프. 그가 이끄는 라듀레에 무지개 빛 앞날만 가득하길 바라본다. 주소 서울시 동작구 여의대방로 256(대방동) 문의 070-4210-7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