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모리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영화와 빵집의 흥행공식은 유사하다. 첫째 ‘입소문’, 둘째 ‘좋은 재료’, 셋째 ‘탄탄한 작품성’. 아이모리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자면 이곳은 “좋은 재료로 탄탄한 품질의 다양한 빵, 과자를 선보여 안산에서부터 조금씩 회자되고 있는 뚝심 있는 빵집”이다. 일본어로 ‘사랑의 숲’이란 뜻의 아이모리. 제과업계에 종사하던 중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껴 훌쩍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는 연제홍 셰프의 소박한 추억과 철학이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기존에 있던 인테리어를 거의 손대지 않아 약간은 순박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이러한 인테리어에는 사연이 있다. 영화에서도 갈등이 필수요소이듯 아이모리에도 청천벽력 같은 시련이 있었다. 2010년 봄, 문을 연 지 보름 만에 바로 옆에 프랜차이즈가 업체가 들어선 것이다. 제품가격과 입지조건을 비교했을 때 불 보듯 뻔한 싸움이었다. 주변의 상권조사를 통해 최적의 위치를 선정하고 꽤 많은 비용을 투자해 인테리어까지 새롭게 한 상태였으니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진퇴양난의 순간이었다. 승산이 없다 판단한 연 세프는 지체하지 않고 때마침 자리가 난 큰길가로 매장을 이전했다. 이미 초기비용을 전 가게의 인테리어에 많이 쏟은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의 가게는 카페로 운영되던 기존인테리어를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방법은 화려한 인테리어도, 완벽한 입지조건도 아닌 좋은 재료와 거기에 정성을 담아 빵을 만드는 것이었다. 연 셰프는 “일본에서는 빵을 만들 때 계량제, 첨가제를 넣는다는 개념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정확한 공정과 장시간 발효를 통해 먹었을 때 소화가 잘되고 풍미가 살아있는 제품생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프랜차이즈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천연발효 빵과 치아바타, 튀기지 않고 천천히 구워낸 건강한 흑미찹쌀 꽈배기와 야끼카레빵, 바닐라 빈이 콕콕박힌 까눌레와 슈 등을 맛볼 수 있다. 블랙올리브, 모짜렐라와 체더치즈 등으로 만든 크로크 무슈, 와사비를 곁들인 스트링 치즈베이컨, 살라미 햄과 유기농 살사소스를 넣은 살사 어니언 등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은 조리빵 종류도 다양하게 선보인다. 커피 또한 신사동의 유명한 로스터리 숍에서 갓 볶은 원두를 사용해 신선함이 살아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다량 생산하는 프랜차이즈의 전략에 맞서 아이모리는 100여 가지에 달하는 소품종 다량생산을 통해 소비자들의 미각범주를 넓혀나간다. 좋은 재료와 대비한다면 결코 높은 가격의 제품들이 아니지만 빵, 과자의 가격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포장비용을 간소화했다. 또한 제품의 커다란 크기와 가격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일단 그들이 새로운 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품을 잘라서 조각단위로 판매한다. 매장에 아이디어를 불어넣는 힘은 셰프 혼자만의 힘으론 불가능하다. 매장 한편에 그려진 셰프를 꼭 닮은 벽화, 제품의 재료와 단면을 상세하게 기록한 팻말은 모두 직원들의 솜씨다. 제품생산을 함께 담당하는 동료들 역시 안 좋은 상황에서도 셰프를 믿고 따라와 준 든든한 지원군이다. 빵이 분주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정오에 가면 매장은 여대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까다로운 입맛의 여성고객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아이모리의 맛을 보증한다. 외국에서 온 교수님들도 아이모리의 꾸준한 단골고객이다. 안산에 터를 잡게 된 이유를 묻자, 가족과 친척들이 이 동네에 거주하기 때문에 ‘내 가족이 빵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정직한 빵을 만들기 위해서란다. 연 셰프는 일본 고쿠분지의 빵집에서 일하던 시절, 그곳의 빵집 주인들의 마인드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일확천금을 빨리 버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신들이 성장해온 터에서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좋아하는 빵을 계속해서 만드는 것을 경영의 모토로 삼는다고 한다. 허리부상으로 한동안 일을 쉬어야만했던 그이기에 일본빵집 주인들의 이러한 마인드가 누구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고. 지난달에야 처음으로 겨우 적자를 벗어날 정도로 아직 승승장구라 말할 수 없는 단계이지만 아이모리의 이야기는 ‘천장의 잎사귀’ 밀푀유처럼 3년, 5년, 10년 켜켜이 쌓여나갈 것이다. 취재·글 김아름 사진 이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