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즐거운 파티시에 안다즈 서울 강남 황윤정 제과장 황윤정 셰프는 한국 호텔의 몇 안 되는 여성 제과장이다. 홀리데이 인 호텔 광주를 시작으로 현재는 압구정동에 새롭게 오픈한 안다즈 서울 강남에서 제과장으로 근무하며 호텔 제과 파트를 책임지고 있다. 한국 제과업계에서 여성 파티시에가 제과장이 되는 경우는 아직 드문 일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행보는 머지않아 호텔 제과업계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 틀림없다. 황윤정 셰프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 그것은 제과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확고한 신념이다 취재 · 글 박소라 사진 이재희 대부분의 호텔들은 각 나라와 도시의 분위기를 품고 있다. 지난 9월 트렌디한 지역인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에 오픈한 안다즈 호텔은 현대적이고 세련되면서 유쾌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러한 ‘안다즈만의 스타일’은 로비, 객실 그리고 요리와 디저트에도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안다즈 서울 강남에는 호텔의 공간을 구분 짓는 벽이 없다. 저마다 다르게 디자인된 각각의 공간들은 모호한 경계 속에서 분리되었다가도 하나로 이어져, 호텔 자체가 멋들어진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한편 디저트는 심플하고 캐주얼하며 자유롭다. 아기자기한 프렌치 스타일이기보다 내추럴하고 러프한 미국 스타일을 표방한다. 이로 인해 안다즈 호텔의 디저트는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안다즈 호텔 1층에서는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디저트를 즐기는 모습, 가벼운 복장으로 시간을 보내는 주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손님들을 맞이하는 호텔리어들의 복장 또한 캐주얼하다. 공간의 벽을 허무는 파격적인 인테리어를 시도한 호텔은 결국 호텔과 고객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고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콘셉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셰프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안다즈 서울 강남에 오픈 멤버로 합류한 황윤정 셰프는 그곳에서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한 순간의 선택이 가져다 준 변화 황윤정 셰프는 1990년대 후반 IMF로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 중 한 명이었다. 셰프의 과거 직업은 뜻밖에도 물리치료사. 7년의 실전 경험을 지닌 물리치료사였던 셰프는 미국 보스턴 대학교 석사 과정을 다니던 중, IMF가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학업을 포기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바텐더와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4년 반 동안 바텐더로 일했는데, 그 선택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바텐더로 일하다 보면 많은 행사에서 초청을 받아요. 덕분에 음식과 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요리에 점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리하여 2004년 황윤정 셰프는 보스턴에 위치한 뉴버리 컬리지(Newbury Collage)에 입학했다. 뉴버리 컬리지는 1962년에 설립된 대학으로, 호텔 및 레스토랑 관련 교육이 발달돼 있다. 셰프는 외식경영전공으로 교과목 중에 제과제빵 과정이 포함돼 있었다. 영문학 전공과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인정받아 뉴버리 컬리지를 2년 만에 졸업한 후, 첫 직장으로 입사한 곳이 바로 오랜 역사를 지닌 ‘더 랭햄 호텔 보스턴’이다. 사실 황윤정 셰프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랭햄 호텔에서 인턴으로 일했었다. 뉴버리 컬리지와 랭햄 호텔은 연계가 되어 있어 뉴버리 컬리지 학생들이 랭햄 호텔에서 인턴 과정을 밟는 경우가 많다. 당시 셰프는 랭햄 호텔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호텔을 몇 번이고 찾아가 총주방장의 연락처를 물어보았다고 했다. 결국 랭햄 호텔의 유일한 아시아인 셰프가 된 그녀는 무려 5년 동안 랭햄 호텔에서 디저트를 만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대우를 받았다. 넓은 호텔에서 혼자만 경계선 바깥에 서서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고, 야간 근무를 할 때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업무가 주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이를 악물고 업무를 완벽하게 해냈다. 오히려 호텔의 많은 외국인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는데 그 중 하나가 메사추세츠에서 열린 ‘티 컴페티션’에 참가한 일이었다. 그때 셰프는 녹차 티라미수로 디저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총주방장은 물론 동료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손수 만들어 총주방장에게 맛보인 갈비는 랭햄 호텔 신메뉴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단다. 마크 총주방장은 황윤정 셰프가 호텔 파티시에로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사람이다. 셰프는 그에게 지금도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 랭햄 호텔에서 일하고 싶어 무작정 전화로 매달렸을 때도,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일하며 어려움을 겪을 때도 그는 황윤정 셰프에게 기회를 줬다. 그녀에게 그것은 그저 그런 가벼운 기회가 아니라 좌절하지 않을 힘이었다. 10년 동안 탄탄히 다져온 것 황윤정 셰프가 한국으로 돌아온 때는 2010년. 어머니의 건강 악화로 인해 한국에서 머물게 된 셰프는 고향인 대구의 대표 호텔인 노보텔 앰배서더 대구에 입사하며 한국 호텔업계의 페이스트리 셰프로 첫 발판을 떼었다. 노보텔 앰배서더 대구를 시작으로 파트 하얏트 서울, 메종 글래드 제주, 홀리데이 인 호텔 광주, 쉐라톤 디큐브시티 호텔을 거쳐 현재의 직장인 안다즈 서울 강남에 이르렀다. 셰프는 지금까지 거쳐 온 수많은 호텔들 중 파크 하얏트 서울과 쉐라톤 디큐브시티 호텔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파트 하얏트 서울은 호텔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여러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호텔로 알려져 있다. 외국 셰프들과의 컬래버레이션 행사가 워낙 많고 고객의 요구에 맞는 디저트를 맞춤 제작해주는 디저트 커스터마이징 서비스가 마련돼 있어 배움의 열정이 있는 젊은 셰프들에게 적합한 환경인 것이다. 황윤정 셰프 역시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단다. 뿐만 아니라 취직 후 1년이 지나면 모든 직원들에게 해외 파크 하얏트의 숙박 기회를 제공해 셰프들의 경우 여러 나라의 호텔 디저트를 경험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황윤정 셰프에게 파크 하얏트 서울이 도전의 무대였다면 쉐라톤 디큐브시티 호텔은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기량을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곳이다. “쉐라톤 디큐브시티 호텔은 일하는 내내 재밌었던 기억이 나요. 쉐라톤에서는 사계절 디저트 프로모션을 진행하거든요. 그만큼 디저트의 비중이 높아요. 독일 출신의 헤닝 로이어(Henning Leue) 셰프님이 총주방장인데, 근무하는 동안 저를 많이 지지해 주셨어요” 셰프가 올해 여름 에콜 페랑디의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게 된 계기도 헤닝 셰프 덕분이었다. 오랜 경력을 지니고도 휴가 때마다 프랑스 디저트를 배우러 다닌다는 그를 따라 나선 곳이 에콜 페랑디였던 것이다. 그녀는 에콜 페랑디를 다니는 동안 파리 여러 호텔들의 디저트를 맛보며 정통 프랑스 디저트를 공부했다. 이렇듯 저마다 다른 콘셉트와 디저트 스타일을 지닌 호텔들을 넘나들며 10년 동안 쌓아온 경험은 황윤정 셰프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든 밑바탕이다. 또한 셰프는 이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디저트에 대한 철학을 점점 확고하게 정립해나갈 수 있었다. 노련한 호텔 파티시에의 원동력 오픈 호텔의 경우 모든 것을 새롭게 세트업해야 하는 만큼 페이스트리 셰프에게는 새로운 도전과 같다. 지난 9월 안다즈 서울 강남의 오픈 멤버로 입사한 황윤정 셰프는 요즘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설탕을 줄이는 제과 레시피를 연구 중인데, 이를 안다즈 서울 강남에서 하나둘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디저트, 나아가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초콜릿 자체에 함유된 단맛을 설탕 대신 활용하면 자연스러운 단맛과 깊은 맛을 이끌어낼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제과에 초콜릿을 두루두루 사용하는 편이에요. 일례로 뉴욕 사워 치즈케이크에는 화이트초콜릿을 넣어 단맛을 냈고 메이플 피칸 타르트에는 설탕 양을 줄이는 대신 졸인 메이플 시럽을 첨가했어요. 이렇게 하면 조청처럼 식감이 쫀득해져 더 맛있고 단맛도 가벼워져요” 안다즈 서울 강남의 디저트를 소개하는 황윤정 셰프의 반짝이는 눈과 들뜬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녀가 안다즈 서울 강남에서 선보일 디저트들이 궁금해졌다. 황윤정 셰프는 호텔에서 페이스트리 셰프로 일할 때 생동감을 느낀다고 했다. “호텔은 사시사철 메뉴가 바뀌고 행사, 케이터링, 프로모션에 따라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야 해요. 기존 레시피를 새롭게 리뉴얼하기도 하죠. 이처럼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고 이것은 스스로를 발전시키기에도 좋아요. 저는 호텔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파티시에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호텔 제과업계에 발을 들인 지 15년이 되어 가지만 황윤정 셰프는 아직도 디저트를 만드는 일이 늘 새롭고 놀이처럼 즐겁다. 그런 그녀에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호텔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열린 광장인 셈이다. 할 수 있는 한 오래 파티시에로 일하고 싶다는 황윤정 셰프의 제과 인생에 훗날 멋진 커튼콜이 함께 할 것이다. 안다즈 서울 강남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854(신사동) 문의 02-2193-1234 약력 2004년 미국 보스턴 뉴버리 컬리지 외식경영학과 졸업 2006년 더 랭햄 호텔 보스턴 근무 2010년 노보텔 대구 근무 2012년 파크 하얏트 서울 근무 2014년 메종 글래드 제주 근무 2015년 홀리데이 인 호텔 광주 근무 2017년 쉐라톤 디큐브시티 호텔 제과장 2019년~現 안다즈 서울 강남 제과장 에콜 페랑디 파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