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n Byung Se 데이즈 앤 데이즈 윤병세 셰프 긍정의 힘을 믿어라 윤병세 셰프는 호텔, 윈도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연구소, 컨설팅 등 기술자로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거쳐왔다. 38년 동안 적게는 1년부터 많게는 7여 년까지 근무한 직장이 10곳이 넘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열심히 걷고 있다.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꿈을 꾼다. 더욱 환하고 창창한 앞날을 위해. 취재 • 글 박소라 사진 이재희 인생을 바꾼 딱 한 번의 우연 1980년, 프라자 호텔에서 윤병세 셰프의 제과제빵 인생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빵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시골 소년. 다니던 고등학교가 한화그룹 재단이라는 이유로 배정받게 된 호텔 조리부 제과팀이 인생을 바꾸는 기회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먹고 살려고 시작한 일이에요. 호텔은 어떻게 보면 직장과 같아요. 월급이 제대로 나오고 수준도 괜찮았으니까. 적성에 맞아서라기보다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니 다른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요. 사실 그때는 처음 시작한 일이 그대로 적성이 되는 시대였지 뭐(웃음)” 그는 3년 정도 지나서야 제과제빵에 흥미가 붙었다고 했다. 2년이 지나니 빵이 구워져 나오는 데 재미를 느끼고 3년이 지나니 공부가 하고 싶어졌단다. 설탕, 밀가루, 달걀 등 재료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론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기본을 알고 나니 빵을 만드는 게 더욱 쉬워졌다. 6,7년이 지나 프라자 호텔의 제빵 사업인 프라자 베이커리에서도 일을 했는데, 토탈 베이커리의 형태였던 만큼 빵, 케이크, 초콜릿을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 그는 프라자 호텔과 프라자 베이커리에서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다고 회상한다. 그후 윤병세 셰프는 롯데 호텔, 인터컨티넨탈 호텔 등을 거치며 성장해나갔다. 20대 후반에 이미 팀장급이 되었으니 훗날 호텔업계에서 그의 입지가 어느 정도에 다다를지 보지 않아도 훤했다. 1993년, 윈도 베이커리업계로 돌연 발길을 돌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열정 호텔에서 일하던 기술자가 개인 제과점에 입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호텔업계의 좋은 배경을 벗어던지기도 어렵거니와 호텔업계와 윈도 베이커리업계는 엄연히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윈도 베이커리업계에 발을 들인 이유에 대해 그는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다행히 호텔에서의 경력 덕분에 좋은 대우도 받을 수 있었다.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에 있었던 디저트 카페 파티오. 그때만 해도 카페 형태의 디저트 숍은 카페 라리가 유일했는데 파티오에서도 비슷한 제품들을 취급했다. 시폰케이크, 티라미수, 크레이프케이크 등 그동안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던 카페 메뉴를 선보이기 위해, 그는 카페 라리를 수십 번씩 오갔다고 고백한다. “그때는 시폰케이크 틀도 구할 수가 없었어요. 일본에서 시폰케이크 틀을 사다가 제과제빵 도구 제조업체를 통해 직접 제작해 사용하곤 했으니까요. 떠먹는 티라미수는 있어도 티라미수케이크는 생소했죠. 여러 번 보고 또 보고 연구해서 전부 새롭게 개발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그의 열정은 2년 후 빛을 발했다.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것. 현대백화점 반대편에 위치한 프라다 제과였다. 프라다 제과는 1층에 빵과 케이크를 판매하는 베이커리, 2층에 카페를 운영하는 베이커리 카페였는데, 카페 공간의 규모만 무려 120평에 달했다. 이곳에서 셰프는 빵을 책임졌다. 제빵에 집중하다가 제과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 때면 제과제빵 관련 책을 보면서 거듭 공부했다. 월간 <제과제빵(현 파티시에)>이나 <베이커리> 같은 잡지가 당시 그의 둘도 없는 스승이었단다. 탄탄대로였던 그의 인생에 불행이 닥친 것은 밀레니엄 시대가 시작된 2000년대 초반. 주식에 손을 댄 순간부터다. 그리고 그보다 더 뼈아픈 사연도 있다. 그 무렵 종로3가의 유명한 나이트클럽 국일관 건물이 리뉴얼하면서 지하에 푸드코트가 생겼는데, 그곳에 작은 빵집을 열었다가 일주일 만에 문을 닫은 것이다. 그는 호기심에 뛰어든 주식 투자금, 호기롭게 도전했던 가게 계약금을 몽땅 날렸다. 이때의 실수는 지금의 그를 종종 채찍질한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제주도에 위치한 샤인빌 리조트는 한창 시간에 쫓기고 안 좋은 일에 휘말린 그가 일종의 휴식처로 택한 곳이다. 샤인빌 리조트에서 그는 즐거운 기억이 많다. “원래는 지인의 권유로 잠깐 일을 도와주러 갔어요. 면접도 보지 않고 바로 출근을 했는데 저를 처음 본 책임자가 빵처럼 생겼다고, 빵 잘 만들겠다고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웃음) 서울 호텔들에서 만들었던 빵을 제주도에서 선보였는데 리조트에 맛있다고 입소문이 났어요. 그렇게 눌러앉게 됐죠” 그때 그가 개발한 히트상품이 있다. 바로 식빵 반죽에 필링을 넣고 감싸 납작하게 눌러 만든 ‘호떡빵’. 지금의 샤인빌 리조트는 올인 촬영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묵었던 곳으로 더 유명하지만 그때는 샤인빌 리조트 하면 모두 호떡빵을 떠올렸다. 서울에서 온 손님들이 50~100개씩 포장해가곤 했으니 호떡빵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윤병세 셰프의 이력을 살펴보면 한 가지 독특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파리바게뜨 연구소에서의 근무 경험이다. 파리바게뜨 연구소는 선물류, 케이크류, 빵류 등 파트별로 부서가 나뉘어져 있는데 그는 선물류 파트였다. 선물용으로 좋은 품목들을 개발해 히트상품화시키는 것이 그의 업무. 당시 권영복(현 브레댄코 이사), 최문성 셰프와 함께 일하면서 카스텔라의 품질 개선은 물론 에그 타르트, 미니 케이크 ‘치즈가 부드러운 시간’과 ‘초코가 달콤한 시간’ 등 다수의 신제품을 개발했다. 이 제품들이 몇 만개씩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얻으면서, 파리바게뜨 내에서 가장 취약했던 선물류 매출은 100% 신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3년 여 후 SPC의 또 다른 계열사 샤니에서는 팀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샤니는 저가의 베이커리 브랜드 르뽀미에와 수퍼마켓에 주로 입점하던 따삐오를 운영하고 있었다. 저렴한 빵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이라 몇 백개씩 매장을 전개할 정도로 붐이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더 큰 피자’라는 수제 피자를 개발했다. 1만원이 조금 넘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이 제품은 홈플러스와 계약 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과거 SPC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 달에도 몇 가지씩 신제품을 선보이던 윈도 베이커리에서의 경험이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도 적합한 제품을 개발하는 능력만큼은 확실히 터득한 셈이다. 경력보다 중요한 것 윤병세 셰프가 데이즈 앤 데이즈에서 근무한지 올해로 3년이 조금 넘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빵집으로 알려진 데이즈 앤 데이즈는 다양한 종류의 빵과 케이크, 음료를 판매하는 베이커리 카페다. 셰프와 취재를 약속한 시간은 오후 3시. 베이커리에서 하루 중 그나마 여유가 조금 생기는 시간이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건물 2층에 자리한 데이즈 앤 데이즈에는 그 시간에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역세권에 위치해 유동인구가 많은 데다 몇 십 명은 충분히 수용할 만큼 넓은 공간, 새벽 3시까지 문을 여는 영업시간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분주한 홀 뒤편에서 직원들과 빵을 만드는 셰프가 보였다. 데이즈 앤 데이즈의 제빵사는 셰프를 포함해 3명이다. 건강빵부터 조리빵, 소프트계열 빵, 구움과자, 케이크까지 200여 종의 제품을 선보이는 만큼 주방은 늘 바쁘게 돌아간다. 셰프에 따르면, 효율성을 위해 일반 반죽법과 냉동반죽법을 병행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매출이 저조하던 데이즈 앤 데이즈를 일명 ‘구디 빵집’으로 유명해지게 만든 비결은 다름 아닌 변화다. 그는 데이즈 앤 데이즈에 처음 입사했을 때 제품부터 모두 손봤다고 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 돼요. 제품의 종류를 바꾸고 작업 환경과 같은 시스템을 조금 개선하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환경은 바뀌는 거거든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자신을 믿고 하는 거예요” 그의 주방에는 그동안 모아 놓은 레시피 책이 여러 권 꽂혀 있다. 그는 닳고 닳아 손때가 잔뜩 묻은 그 책들 속의 배합비를 고치면서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이 지금도 좋다. 윤병세 셰프는 향후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를 담아 간단하게 먹기 좋은 빵과 요리를 두루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밀가루 반죽을 만지며 살아왔지만, 그는 여전히 꿈을 꾼다.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경력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하는 기준일 뿐이에요. 경력이 다가 아니에요. 이제는 젊은 세대와 같이 걸어가야 해요. 그걸 인정해야 하고요. 우리에겐 경력보다 능력이 필요해요” 그의 긍정 마인드는 언젠가 그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변화시킬 것이다. 데이즈 앤 데이즈 주소 서울시 관악구 시흥대로 578(조원동) 전화 02-869-0077 약력 1980년 프라자 호텔 근무 1986년 프라자 베이커리 근무 1987년 롯데 호텔 근무 1988년 인터컨티넨탈 호텔 근무 1993년 파티오 근무 1996년 프라다 제과 근무 2002년 르뺑 근무 2003년 샤인빌 리조트 근무 2007년 파리바게뜨 연구소 근무 2011년 샤니 근무 2013년 나폴레옹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김포점 생산이사 2014년~現 데이즈 앤 데이즈 책임자 2017년~現 대한제과협회 강남지회장 캡션 1. 제과제빵업계에 들어선 지 40여 년이 되어가는 윤병세 셰프 2,3. 윤병세 셰프는 여전히 현장에서 직원들과 빵을 만든다 4. 주방에는 그동안 모아 놓은 레시피 책자들이 꽂혀 있다 6,7.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위치한 베이커리 카페 데이즈 앤 데이즈 8. 데이즈 앤 데이즈에서는 200여 종의 빵을 판매하고 있다 9. 윤병세 셰프와 손발을 맞추고 있는 직원들